여행 이야기/미국2010.08.12 08:00

나의 첫 해외여행은 2003년 여름 미국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한지 몇년이 지나고서야 첫 해외여행을 한 셈이니 많이 늦었다. 학교 다닐 때는 이것저것 활동하느라 방학도 거의 없이 지냈다. 나름 빡세고 열심히 대학 생활을 했다고 자부하지만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에 해외연수나 배낭여행을 가봤더라면 좀더 넓은 세계를 일찍 접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회 생활 하면서 조금 모은 용돈을 가지고 갓 군대에서 제대한 막내 동생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마침 뉴욕 근처의 뉴저지 쪽과 뉴욕에서 남쪽으로 차로 4~5시간 걸리는 워싱턴D.C에 동생 후배와 학창 시절 같은 동네 살던 후배가 살고 있었고, 뉴욕 위의 코네티컷으로 이민간 후배도 있어서 신세를 지면서 보스턴까지 올라갔다오는 앞뒤 주말 포함해서 8~9일 정도의 빡센 여행이었다.

뉴욕 시내 구경을 했던 2~3일을 빼고 장거리 이동할 때는 렌터카를 이용했다. 네비게이션도 없었지만 미국은 도로 사정이 좋고 도시간의 이동이어서 고속도로 중심으로 표지판과 지도를 보면서 돌아다녔다. 당시는 마이카 족이 되었던 초기라서 겁없이 차를 몰고 다녔던 기억이다.

뉴욕에 도착해서 뉴욕에서 남쪽에 있는 워싱턴D.C로 갈때 였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는데 뒤에서 쫓아오는 차가 상향등을 켜면서 번쩍이는 것이었다. 옆 차선으로 비켜주었더니 그래도 따라온다. 백미러로 자세히 보니 차 위에 뭘 달고 있는데 파랗고 빨간색이 번쩍번쩍 거린다. 경찰차였던 것이다. 

갓길로 세우니 경찰이 와서는 뭐라고 쏠랑쏠랑 거리는데 잘 들으니 fast와 speed라는 단어가 들린다. 과속이라는 모양이다. 난 잘 안되는 영어 몇 단어에 몸짓 발짓해가면서 앞차만 따라갔다고 하는데 No란다. 한국에서온 여행객이라고 sorry 어쩌구 하니까 좀 봐주겠다는 식으로 하면서 무슨 종이를 하나 준다. speed ticket 이라고는 하는 과속 딱지다. 

나중에 대략 읽어보니 그냥 얼마 범칙금을 내라는 게 아니라 지정된 날짜와 시간이 써있고 무슨무슨 court로 나오라는 얘기다. 미국은 그냥 과속 범칙금 티켓을 발부하는 게 아니라 관할 법원에 나가서 금액을 조정 받아야 한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며칠 여행가 있는 사람한테 법원에 나오라니, 또 그 나오라는 court는 어딘지 모르는 난생 처음 듣는 작은 곳이다. 미국에 사는 후배한테 물어봐도 모르겠단다. 지금이야 구글 지도에서 두드리면 나오겠지만 당시만해도 그렇지 못했다. 아니 그럴 생각도 안했다.

좀더 적극적으로 해결하자고 했다면 영어 잘하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전화를 해서 어찌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했겠지만 그냥 설마 뭔 일 있겠냐 싶어서 남은 여행을 다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출입국 기록을 보니까 그 이후로 25번이나 외국을 들락거렸지만 미국에 갈 일은 없었다. 그러다 운 좋게 공공재단에서 지원하는 연수를 받게 되어서 1주일여 미국을 가게 되었다. 공짜 여행, 아니 연수를 하게 된 것이다. 

얼마전부터 미국도 무비자로 여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별 걱정 안했는데 연수를 주관하는 여행사와 여권, 비자 관계를 확인하다보니 이게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은 세금 납부를 중요시 하는 나라이고, 9.11 테러 이후에 입국 심사를 강화해서 범칙금을 안내고 오면 입국이 거절될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해결을 하는게 날거라고 한다. 

집에 가서 혹시나 하고 speed ticket을 찾아봤지만 7년이나 지났다. 영어로 된 작은 종이가 집에 그래도 있을리가 없다. 어느 court 인지도 기억이 안난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과속 티켓의 시리얼 넘버와 court를 알아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주민번호만 두드리면 뭐든지 다 튀어나오는데 미국은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미국의 여행사에 다니고 있는 후배에게 부탁을 하니 자기네 자문 변호사가 알아봐도 별 방법이 없단다.

여행사에서는 혹시 모르는 무비자 ESTA를 통해서 입국하는 것보다 여행 비자를 받는 게 어떻냐는 의견이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 대사관에 가서 인터뷰를 해야 하지만 혹시 전산망에 문제 소지가 있으면 그 과정에서 파악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자를 받는다고 미국 입국이 보장된다는 확신도 없었다. 

미국 대사관 홈페이지에 있는 이메일로 민원 문의를 보냈다. 혹시나 피해를 입을까봐 내가 아니라 부모님의 일인 것처럼 해서 문의를 했다. 며칠후 답변이 왔는데 미국 비자는 미국 국무부 소속의 대사관, 영사관이 담당하지만 미국 입국에 관한 것은 국토안보부 소속 이민국 직원이 결정하는 거라서 대사관에서는 확답을 못한단다. 

그동안은 웹서핑으로 자료를 찾아봤는데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직접 남겨볼 생각까지 했다. 미국 여행 관련 전문가로 활동하시는 navajokim님께서 답변을 주셨다. 

한국은 한 곳에서 이런 티켓을 처리하지만 미국은 각 시에서 관할하게 되어서 조회를 통해서 검색을 해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티켓 문제, 법원출두를 하라고 하는 것은 기록이 되지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기록에 나타나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navajokim님에 따르면 5년 정도 전부터 문제시된다는 공지를 봤다고 한다.

과속을 해서 court로 오라고 한 것이 일반적인 통보이면 추가 벌금만 납부하면 되는데, 30마일 이상 과속이었다면 법적 모독죄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미국 입국을 하면서 문제시 되면 사정 설명을 하고 지금이라도 내겠다고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대충 상황 파악이 되었다. 미국에서 경찰이 봐준다는 식으로 했기에 30마일 이상 과속으로 처리는 안했을 것으로 예상됐다. 결국 난 여행 비자를 신청하고 인터뷰를 신청했다. 전에 미국 비자를 받은 적이 있지만 학교 다닐때 인터뷰 없이 발급받아서 이번은 인터뷰가 처음이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버벅거리다가 괜히 퇴짜 맞는 거 아닌지, 어떤 질문을 할지 걱정했다. 몇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에서 비자 인터뷰 사례를 봤다.

인터뷰 당일, 밖에서부터 줄을 서가면서 미국대사관에 들어갔다. 서류 점검을 받는데 6개월 내에 찍은 사진이 아니라고 다시 찍어오라는 거다. 헐... 아무리 살이 쪘다고 해도 그렇지 사진을 다시 찍어 오라니. 알고보니 여권의 사진과 같은 사진을 제출했는데 여권을 재발급 받은지 2년 가까이 됐으니 할 말이 없다. 

2층 인터뷰 받는 곳으로 올라갔는데 여름방학 기간이라서 어학연수 받기 위해서 비자 인터뷰하는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인터뷰 받는 곳은 무슨 교도소 죄수 면담하듯이, 아니 전당포 물건 맡기는 곳처럼 생겼다. 그래도 밀폐된 공간은 아니고 은행처럼 오픈되어서 대기하면서 뒤에서 다 보이고 간혹 인터뷰 내용이 흘러 들리기도 한다.

6~7명의 영사관이 각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짧은 사람은 2~3분, 긴 사람은 30여분 넘게 인터뷰하는 사람도 보인다. 코쟁이 미국인이 3명 정도였고, 나머지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보였다. 기본으로는 영어로 인터뷰를 하지만 영어를 잘 못하면 우리말을 직접 쓰거나 옆에서 통역이 달려와 도와주는 식이다. 

내 순서는 한국계. 하지만 우리말을 먼저 하지 않더라. 내 직장을 먼저 확인한다. 인터넷 관련 계열사이긴 하지만 언뜻 회사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를 확인하니 영사관의 표정에서 긴장을 찾아볼 수 없다. 왜 가냐고 해서 여행하러 간다고 하고, 연수 일정표를 보여주니 웰깜투 USA란다. 별 말없이 2~3분도 안걸린 듯 싶다. 


그리고 3일 정도 후에 회사로 미국 비자가 붙은 여권이 배달되었다.

미국 비자 인터뷰까지 통과되었으니 기본적인 전산망에 별 문제 없으리라는 확신이 섰다. 그래도 100%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13시간반 동안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가면서 그래도 20% 정도는 입국 거절될 수 있을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입국 거절되면 목적지인 애틀란타 공항에서 공항 밖도 못나가고 곧장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의 도착할 무렵 비행기 창밖으로 애틀란타 도심이 보이는 모습이다. 

장시간의 비행 후에 나오자마자 입국 심사. 이곳도 줄이 엄청 길다. 30분 이상 기다렸던 것 같다. 조마조마... 하지만 입국 심사관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무사 통과!!! 과속 티켓 경험 때문에 파란만장했던 2번째 미국 여행 준비는 그렇게 성공적인 나의 2번째 미국 여행, 아니 연수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이제 서서히 미국 2번째 여행기 겸 연수에 대한 내용을 올리겠다.

Posted by 강정훈닷컴 정훈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