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2013.03.23 21:44

출근길에 후배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요즘 많이 피곤했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웬지 예감이 이상했다. 병원을 알아내어 직접 응급실에 전화해보니 방금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한다. 응급실 간호사에게 어떤 상황이냐고 물으니 가족에게 직접 확인하라고 한다. 


병원으로 향했다. 젊은 제수씨와 부모님은 벼락을 맞은 듯한 표정으로 얼이 빠져 있었고, 불과 17개월 정도밖에 안된 후배의 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로비에서 칭얼대고 있다. 마침 전날 오후에 페이스북에 자기 아들이 소파 밟고 서랍장 위에까지 올라갔다며 사진을 올렸는데 그 얼굴이다. 아마도 아들이 집에서 놀고 있는 사진을 아내가 그 후배에게 보내줬나보다. 


5시간 가까이 지나서 수술실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은 차마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호흡기를 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그의 아내와 부모님께 시선이 갔지만 차마 그들의 눈은 쳐다보지 못하겠다. 


중환자실에 옮겨진 후 의사가 수술 소견을 말해주는 데 기가 막힌다. 두개골은 깨져서 뼛조각이 있고, 뇌출혈이 너무 심했고, 수술후 CT를 찍었는데 뇌의 절반이 검게 변했다고 한다. 병원에 처음 올때 체온은 체온계로 측정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았고 중간에 심박이 잠시 멎기까지 했단다. 수술시간 동안 설마하며 가졌던 작은 희망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TV 드라마나 나오는 장면인 줄 알았는데 말인데.


웹개발자인 그 후배는 전날 밤 늦게 집으로 향했다. 밤 11시가 넘어 집으로 향하면서도 회사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개편을 1주일 앞둔 담당 프로젝트에 대한 각오와 다짐을 얘기한다. 그리고 지하철에 내려 화장실에 들어갔지만 몇분후에 화장실에서 나오는 CCTV 화면속 그의 모습은 들어갈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경찰이 목격자 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는 화장실에 들어간지 얼마 안되어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충격을 받으며 쓰러졌고 그렇게 몇분동안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 화장실을 이용한 몇명의 사람들은 너무나 야속하게도 그냥 지나쳐버린다. 나중에 공익근무 요원이 찾아왔지만 그 후배는 또 벌떡 일어나서 비틀거리며 화장실을 나와서 지하철 역을 나온다. 그 몇분 동안 누구 한명이라도 119에 신고라도 해줬다면, 그때 후배가 일어나지 말고 병원에 실려갔었더라면...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다. 그 후배는 불과 6시간 전에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던 아들과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마지막 힘을 다했던 것일텐데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다. 


그리고 그 후배는 다음날 아침 7시가 되어서 집을 한 블럭을 지나친 곳에서 동네 주민에게 발견되어 병원에 실려간 것이다. 아내는 여느 때와 같이 회사 일로 야근을 하고 있었는 지 알았다고 한다. 경과를 들으며 내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병원을 찾았을 때 애기 엄마는 그 전에는 안면도 없었던 나를 붙잡고 얘기한다. "애기도 어린데 저희 어떻게 해요..." 가슴이 미어지고, 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함께 일하던 회사 동료들도 그 후배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답답해 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혈압과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린다. 혹시나 잠시라도 의식을 찾아 아들과 가족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도 잠시뿐... 


딱 3주가 되는 날 그는 세상을 떠난다. 장례식장 뒷 테이블에서는 "쓰러진 날 갑자기 가버렸으면 미쳐버렸을 건데 그마나 준비할 시간을 준 것 같다"는 어머님의 말씀이 들린다. 결혼 턱시도를 입고 찍은 웨딩사진이 영정사진으로 변했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회사 로고가 찍힌 상조용품을 만들었는데 하필 그 첫번째 사용이 직원 본인상이 되고 만다. 


발인을 하고 마지막 가는 길에 직장 선후배들의 도열 속에 회사를 찾았다. 그가 몇년간 함께 했던 사무실 책상 자리를 둘러 본다. 연두색 회사 자켓을 입고 떡 벌어진 어깨로 앉아 있던 그 자리에는 그의 소지품과 국화꽃만 놓여 있을 뿐이다. 어머님은 책상 위에 놓은 명함 몇개를 가방 속에 넣으신다. 어머님께서 혼잣말로 "이 회사 다닌다고 자랑하더니만 명함을 이렇게 처음 받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신다. 이제 34살. 부모님께는 이제 장성하여 직장도 자리 잡고, 결혼도 하고, 떡두꺼비 같은 손자도 안겨줘서 이제 다 키웠다고 안심할 때인데 말인데... 그 후배는 한줌 재로 변해서 강원도 홍천의 한 나무 아래 자리했다.  


TV 드라마에나 나오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Posted by 강정훈닷컴 정훈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