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2007.09.04 18:33

뉴스의 가장 큰 소비처 중 하나가 시장, 특히 증권사 객장이지 않나 싶다.
그 많은 경제전문지와 뉴스가 뭘로 먹고 사나 했더니 주식시장을 보면 뉴스에 민감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으로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증권사 프로그램에서 각 종목별 뉴스와 주가추이는 실시간으로 연동되면서 일희일비를 이끌어낸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관련 주식이 뜨고, 누가 대선후보로 유력하다고 하면 관련 주식이 뜨고, 미국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크게는 하루에 15%씩 올라가고 내려간다.
돈, 재산 아니 기업의 자산, 국가의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한다.

정치판도 뉴스의 가장 큰 소비처 중 하나다.
정치인들은 한번이라도 매체에 나오기 위해서 애를 쓴다.
별거 없는데 기자회견을 하고 보도자료 뿌리고...
매체, 뉴스에 등장하면 그 소식들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박히고 곧 여론조사라도 하게 되면 몇 %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국민여론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은 권력을 탄생시킨다.

그런데 신기한게 있다. 그 뉴스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아니 그 뉴스속의 논평과 해석, 해설들은 어떻게 그렇게 뚝딱 금방 나올까?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매체들의 뉴스들을 보면서 저 기사를 쓴 기자는 얼마만큼의 고민을 하고 저런 생각을 남에게 얘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Posted by 강정훈닷컴 정훈온달
미디어 이야기2000.09.03 22:50
서태지 뮤직비디오 현장에 기자 몰래카메라 소동

96년에 서태지가 은퇴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 있다. "...음악인의 권리찾기에 싸워온 저희의... 음악인들이 순수하게 음악만을 고집할 수 있는 문화풍토를 조성해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무슨 소리냐. 언론이 서태지를 하도 들들 볶아서 도저히 이 땅에서는 못살겠다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2000년. 서태지가 왔다. 언론 보도를 보자.

"서태지가 왔다." '''우우우~~~~''' (기자들이 서태지 카메라에 담으려 뛰어가는 소리, 아! 이 때 기자들에게 '포토라인'이란 없으며 뒤에서 팬들이 "태지 안 보여"라고 외쳐도 저희들 카메라에 담아서 특종이랍시고 저희들 신문, 방송에 내면 그뿐이다)

그런데 서태지가 잘 안보인다. 사진 한장 찍을 시간도 안준다. 카메라보면서 한번 웃기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한마디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옆에서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들이 둘러싸고 있을 뿐.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는다.

큰일났다. 내일 아침 신문, 오늘 저녁 방송연예 정보프로그램 1면에 내야 하는데, 그래서 구독률 올리고 시청률 올려야 하는데, 서태지는 이미 한 개인이 아니라 대중적인 스타인데, 일반 대중들은 서태지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어서 서태지를 사람들한테 알리는 것이 당연한데, 서태지는 자기를 안 보여준다.

답답하다. 제대로 된 사진 한장이라도 찍어야 하는데, 서태지가 지금 무얼하고 있는지 기사를 써야 하는데, 특종감인데... 무슨 신비주의 전략이냐. 내일 아침 신문, 오늘 저녁 방송에 내야 하는데...

일간스포츠 기자가 서태지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에 몰래 숨어들어서 사진 찍으려다가 걸렸다고 한다.

일간스포츠 보도에 따르면 "9월 2일 강화도에 소재한 R.O.K 촬영소(김포시 통진면 옹정리)에서 서태지의 뮤직 비디오 촬영이 극비리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취재를 나간 본지 기자 2명이 1시간 가량 스튜디오 내부에서 감금되고 카메라와 필름을 강탈당하는 등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양승호 기자의 이 기사의 제목은

"기자억류·폭력부른 서태지 '신비주의'"
""기억도 지워버리겠다" 위협 카메라 뺏고 필름강탈 '횡포'"
"기자의 취재권과 독자의 알 권리를 훼손한 건으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하라고 기자의 취재권이 주어졌던가요? 독자들이 서태지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에 몰래 숨어들어서 사진찍어 오라고 했습니까? 거기에 왜 독자의 알권리가 어쩌고 저쩌고 갖다가 붙이냐구요.

이제 또 뭐라고 하겠지요? "서태지 거품이다" "서태지 생각보다 별로다"

우리 서태지 음악 좀 들어봅시다. 기자 여러분.

<2000-09-03 22:50 오마이뉴스에 쓴 글>
Posted by 강정훈닷컴 정훈온달
미디어 이야기1999.05.13 00:39

"1편보다 재미있는 2편은 없다."는 말이 있다. 나름대로 준비하여 기획한 1편과 그 1편의 인기와 영향을 이어가려는 2편이 그 작품성이나 인기면에서 1편을 능가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2편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한동안 잠잠하던 A양, O양 사건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아니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언론들의 O양 사건의 2탄을 열었다.

O양 사건의 2탄의 시발은 기독교계의 국민일보에서 내는 스포츠연예신문인 '스포츠투데이'에서 열었다. 미국에 잠적해 있던 O양 사건의 주인공 오현경씨를 직접 72시간동안 인터뷰한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 7일(이후 4일에 걸쳐서) '스포츠투데이'는 오현경씨와의 인터뷰를 신문 톱기사로 보도했다. 인터뷰에서 오현경씨는 오양의 주인공은 자신이 맞다. 비디오를 합의해서 찍었으면, 헤어질 때 비디오를 뺏었을 것이고, 당시 옷차림은 기억 나는데 비디오를 찍은 기억이 전혀 없다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또한 그녀의 가족에게 허락도 맡지 않은 채 인터뷰에 응한 비디오주인공의 상대남자인 ㅎ씨를 비난하며, 비디오를 고의로 유출했는지에 대해 관계당국의 재조사를 요청했다. 또한 '단독인터뷰', '5월 귀국'등은 모두 거짓이며 일부 언론들에 대해 법적 대응의 뜻도 밝힌 것이다.

길을 지나다 가판대의 신문을 보면서 'O양 사건에 대해 또 스포츠신문에서 다뤘구나.' 했던 나의 단순한 느낌은 그 날밤 MBC뉴스데스크를 보면서 '재미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스포츠투데이'가 인터뷰를 비디오로 찍어와서 MBC뉴스데스크 시간에 주요 소식으로 보도된 것이다. 그리고 뉴스 시간에 자세한 내용을 자사의 신설 연예정보프로그램인 「MBC 섹션 TV 파워 통신」에서 다시 보여주겠다고 예고까지 했다. 그리고 그 방송이 일요일 오후에 20여분에 걸쳐서 방송되었다. O양 사건의 2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사실 2탄이 시작되기 전 언론은 O양 사건으로 인해 비판의 도마위에 올라있었다. 한 여자의 한때의 사랑을 그렇게 무참하게 짓밟아 상업적으로 이용해먹을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런데 왜  '스포츠투데이'는 꼭 미국까지 쫓아가서 악착같이 인터뷰했으며, MBC는 9시뉴스의 주요뉴스로 장식하고, 주말 오후 6시에 20분동안이나 장식했는가.

'스포츠투데이'. 순복음교회의 국민일보에서 발간하는 스포츠신문이다. 선정주의가 판을 치는 스포츠연예신문 시장에서 종교정신을 바탕으로 건전한 스포츠연예신문을 지향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신문이다. '스포츠투데이'가 오현경씨는 직접 취재하기 위해 내세운 의도는 'O양 사건이 더 이상 연예스캔들이 아니라 사회 문제화되었기 때문이기에'라고 한다. 하지만 '스포츠투데이'가 창간한지 몇 달도 되지 않은 스포츠신문이란 점은 왜그리 집요하게 직접 인터뷰하려고 노력했는지 짐작이 가는 일이다.

「MBC 9시 뉴스데스크」그리고 「색션 TV-파워통신」. MBC 역시 '사회문제화된 사건에 대한 당사자의 인터뷰를 공개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속내는 그리 간단치 않은 것 같다. MBC는 작년말부터 방송법 개정과 관련한 MBC의 위상과 관련해 공영방송의 이미지를 부각하려고 많이 노력하였다. 그것이 제대로 되었느냐는 둘째 문제고 이는 현실적으로 MBC의 자랑이던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의 시청률을 SBS에 많이 빼앗기게 되었다. 거기에 기록적인 시청률을 자랑했던 「보고 또보고」가 종영된 이후 후속드라마인 「하나뿐인 당신」이 KBS에 시청률이 뒤지기 시작하면서 「MBC 9시 뉴스데스크」의 시청률 또한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MBC로써는 위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O양의 당사자인 오현경씨를 직접 인터뷰한 화면은 MBC의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투데이'와 MBC의 전략적 제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추측(?)해 볼 수 있는 2탄의 현실적 문제점들은 곧바로 다른 언론의 반격을 받게 된다. O양 사건 2탄이 절정에 올라가는 순간이다. 역시 그 선봉에 있는 언론(?)은 기존 스포츠연예일간지의 3두마차인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과 '일간스포츠'의 모신문인 '한국일보'이다.

이 들의 논리는 대강 앞의 문제점과 상통하지만 역시 특종을 놓친 그들의 논리에 불과한 것 또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지난 3월 13일 '최초인터뷰'란 제목으로 기사를 낸 '스포츠조선'은 자사는 분명히 전화인터뷰를 했다며 '최초'운운하지 말라고 한다. "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오현경에 대한 최근 한 스포츠지의 잘못된 자가발전식 왜곡보도에 관해서다. 한동안 잠잠했던 차에 무려 두달 가까이 지난 후 `최초'가 또 다른 신문에 실렸다. `사건후 최초 본지단독회견'이란 제목을 달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O양이 두명인가?. 그 신문 수고했다. 그러나 앞으로 지면에 공언한대로 `진실'만을 써주길 바란다." <스포츠조선 5월 11일자 "O양보도 왜곡말라" 이준형기자>

스포츠서울은 그를 방송한 MBC를 뉴스데스크의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공격한다.  " MBC 뉴스데스크가 심각한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공영방송의 간판 뉴스프로그램으로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보도태도를 유지해야 함에도 과거의 보도를 스스로 뒤집고 정당화하는 야누스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사실 음란비디오 보도의 '원조'는 MBC. 지난 97년 '빨간 마후라' 비디오가 시중에 나돌 때 MBC는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이 비디오를 가장 먼저 소개했고 사회문제로 비화시켰다. 그런 MBC가 다른 매체의 보도에 대해서 비난하고 나섰던 것은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였다. 자기반성없이 좌충우돌하는 'MBC뉴스데스크'의 보도행태가 얼마나 계속될 지 지켜볼 일이다." <스포츠서울 5월 12일자 "'선정주의 앞장' MBC 뉴스데스크" 이평엽기자>

일간스포츠는 사실 더 배가 아플만 하다. 그 이유는 오현경씨의 직접 취재에 성공한 '스포츠투데이'의 기자가 불과 몇 달전(99년초)까지 일간스포츠의 기자로 활동했던 신동립 기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간스포츠의 모신문인 한국일보는 아예 이를 언론의 광기(狂氣)로 규정해버린다. "언론도 대단하다. 비디오가 화제라는 것을 전하는 것으로 모자라 미국에 숨어있는 사람을 끝까지 추적해 '내가 잘못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방송은 인터뷰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진행자들은 '참 안된 일이지만 잘못했지'라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언론의 광기(狂氣)다. 대중의 천박한 관심을 '국민의 알 권리'로 포장하는 억지다. 관음의 문화와 낡아빠진 성윤리와 언론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고 있다. 연예인은 공인인가, 아닌가라는 논란을 접어두고라도 이 나라에 도대체 인권이 있는가? 그 많던 페미니스트들은 또 다 어디로 갔는지?" <한국일보 5월 13일자 "'O양'의 인권은?" 김범수 기자>

정말 재미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까지 신문의 1면 톱을 며칠동안 장식하며 비디오의 장면까지 캡쳐해서 보여주며 분명 O양은 오현경이 맞을 거라며 떠들다가 다른 경쟁신문이 직접 인터뷰에 성공해서 다른 언론의 비윤리성을 탓하니까 그를 다시 끄집어 낸 것이 인권을 유린한 것이라고 욕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 모두의 말이 틀리다고 할 수 없다. 나름대로 다 옳은 소리다. 그런데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며 보도를 접하는 기분은 내게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게 만든다.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개인의 명예훼손 등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역할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인기에 영합하여 인터뷰 기사를 지어내고, 대안 없이 흥미만을 추구한다면, 언론의 순기능을 잃는 우를 범하는 것이며 도색잡지나 다름없이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인터넷과 PC통신 등의 전자매체의 발달은 정보의 홍수를 가져오게 하면서 개인의 기본권 침해 양상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앞으로 제2 제3의 오현경씨와 같은 피해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오현경씨는 언론의 인터뷰를 응함으로써 피해 다니는 소극적 입장에서 다시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만일 그녀가 돌아온다면 우리 사회는 그녀에 대해 야유하는 입장을 보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피해자인 그녀가 다시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할 것이다.  

"이미 오현경 인터뷰를 놓고 `자녀와 함께 보기에는 지나친 내용'이라는 시청자 항의가 있었다. 소재가 지닌 함정도 만만치 않다. `문제' 연예인의 반론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소문이나 화제를 다룬다는 걸 뜻한다. 애초부터 선정성을 지닌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전적으로 제작진의 손에 달려 있다."<한겨레신문 5월 12일자 "연예인도 할말 있다." 이성욱 기자>

이번 사건 그리고 그 속편 2탄을 보는 문제점은 결국 방송제작자와 신문편집자의 사리 판단의 중요성과 매체 철학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오양, 니는 죄지은 거 엄따. 오양은 돌아오라 !"<디지털 딴지일보>

Posted by 강정훈닷컴 정훈온달
미디어 이야기1998.09.10 14:39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에서 주최하는 '언론학교'의 강의내용과 26기(98가을) 수강생의 강의평가 (1)


한국 언론의 문제

- 언론과 정치 -


 이효성 (성균관대 신방과 교수, 본회 정책위원장)


한국 언론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정치권력이 어느 정도 민주화함에 따라 그 여파로 상당한 자유를 향유하게 되었고 여러 측면에서 발전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발전은 주로 물량적인 측면에서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한국 언론은 권력을 감시와 비판의 성역으로 두고, 그 눈치를 보고, 알아서 잘 써주는 모습을 보여왔다. 우리 언론은 감시견으로서보다는 수호견으로서 역할한 것이다. 그리고 권력의 상대적인 약화와 더불어 이제는 언론 자신이 정치권력 못지 않은 힘을 행사하는 권력기구화하였다. 게다가 다른 여타 부분들이 어느 정도 개혁을 단행하였지만 언론만은 아무런 개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신문사의 경우 노조의 활동마저 유명무실화하였다. 


이런 정치적 측면에서의 부정적 경향과 함께 경제적 측면에서도 대단히 부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정부의 작용으로 유지되던 언론시장의 독과점이 깨지고 새로운 신문이 신문시장에 참여하고 새로운 방송사가 허용되자 언론시장에서의 경쟁이 격화되였다. 그래서 언론의 상업주의적 성향이 커지고 사주와 광고주의 내적 간섭과 통제도 심화되었다. 언론의 이런 상업성은 특히 양적 경쟁으로 표출되었다. 신문은 증면과 판매에서 엄청난 물량을 투입하는 과당경쟁을 하였고, 방송은 시청률 경쟁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제 한국 언론이 안고 있는 이런 반저널리즘적 문제점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지 그 실상을 살펴보고, 가능하면 그 해소책을 논의하기로 한다.


1) 수호견 역할의 문제

6월 항쟁 이후 군사독재가 무너졌지만 우리 언론은 여전히 집권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왔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니 "언론자유"니 하는 말의 횡행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와 정치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이고, 언론은 여전히 정권에 예속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영삼 정권은 언론사의 세무조사를 실시하고도 결과는 공표하지 않고 선거를 앞두고 사영방송사의 모기업에 대한 세무사찰을 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정권이 언론에게 여러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우리 언론은 이에 과감히 맞서기는커녕 정치권력의 눈치를 살피고 경우에 따라서는 알아서 나서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 언론은 정치권력을 비판의 성역으로 두고, 정치권력의 의제설정을 좇고, 정치권력의 주의주장을 대변하고, 정치권력의 언행을 미화했다. 이는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정치권력을 위해 국민을 오도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는 비판이다. 


우리 언론의 이러한 모습은 그 보도에서 끊임없이 검증되어 왔다. 예컨데, 지난 15대 총선보도에서 우리 언론은 집권세력의 대변인이며 그들을 위한 의제설정자임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우리 언론들은 정부의 안보와 북한 관련 발언을 여과 없이 보도하면서 북한의 비무장지대 불인정 선언과 그에 따른 사소한 시위를 과장하여 마치 남북한간에 전쟁이라도 곧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든지, 여당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정부가 선거철만 되면 마구 남발하는 실현가능성도 없는 선심성 정책이나 장미빛 미래상을 대서특필하였다든지, 여당에게 유리하고 야당에게 불리한 사안은 크게 보도하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에는 사소하게 다루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는 등 편파적인 보도를 자행했다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그 증거다. 선거 후에는 금권선거라는 여당의 커다란 부정선거 의혹은 간과한 채 야당의 사소한 부정선거 의혹만 추궁하는 검찰의 편파적인 자세를 문제삼지 않은 채 그런 검찰의 발표만을 충실히 보도하고, 유권자가 만들어준 여소야대를 인위적으로 여대야소로 바꾸려는 여당의 공작을 방관하고, 검경의 중립 보장과 인위적인 여소야대 파괴 중지를 요청하며 15대 국회의 원구성을 저지하고 있는 야당을 여당과 똑같이 양비론으로 비난한 것도 우리 언론의 편파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또 다른 예를 보기로 하자. 이른바 '한총련 사태'로 알려진, 1996년 8월의 13일부터 약 열흘간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통일대축전과 관련된 사태에 관한 보도와 논평에서 우리 언론들은 공정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노골적인 편향성을 드러내면서 정세를 공안정국으로 몰아갔다. 언론들은 학생들의 주장이나 행동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학생들의 주장이 과연 무엇인지 그들이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제시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나 행동에 잘못이 있다면 무엇이 왜 잘못인지룰 논리적으로 지적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신문이든 방송이든 거의 모두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모는 정부와 경찰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욕설에 가까운 감정적인 언사로 학생들을 매도하면서도 학생들의 주장이나 통일대축전의 목적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았다. 언론은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모습 그리고 그로 인한 파괴와 시민의 불편과 경찰의 피해만을 부각시켰다. 언론들은 왜 갑자기 정부가 학생들의 통일대축전을 원천봉쇄함으로써 과격시위를 부추겼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였다. 경찰의 공격적인 시위진압이나 학생들의 부상에 대해서는 모른 채 하였다. 언론은 학생들의 주장이나 행동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학생들을 "체제전복세력"이니 "친북이적단체" 등으로 매도하면서 학생운동의 "섬멸" 또는 "박멸"을 주장하고 한총련의 시위에 대해서는 평화적 해결이 아니라 "강경진압"이나 "가차없이 응징"을 촉구하는 등 강도높은 증오심과 적개심을 드러냈다. 우리 언론들은 학생들에 대한 이런 무자비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5 6공의 비리인사들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8 15 특사로 석방되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었다. 우리 언론은 학생들의 이상주의에 대해서는 턱없이 적대시하면서 기득권자의 비리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대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언론의 진면목이다.


줄곧 야당후보인 김대중 씨가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했기 때문에 방송이나 신문들이 비교적 공정한 보도를 한 것으로 알려진 15대 대선에서도 몇몇 신문은 집권세력의 수호견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들 신문은 김대중 씨를 용공세력으로 몬 김홍준을 비롯한 정체불명 인사들의 기자회견, 오익제 씨 편지 사건, 이석현 의원 명함 파동 등 안기부의 북풍공작을 과장보도하였다. 지지도 조사에서 이인제 후보가 2위인 때는 3자 대결로 보도하다가 이회창 후보가 2위로 올라서자마자 2자대결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스스로는 IMF와 추후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으면서도 김대중 후보가 재협상을 주장하자 그 때문에 외환난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이회창 후보의 선거전략을 담은 내부문건이 유출되어 국민신당의 거센항의를 받았다. 이들 신문의 논객들은 계속해서 여권 후보의 단일화를 외치면서 은근히 김대중 후보를 음해하는 논설들을 집필했다.


2) 권력기구화의 문제

우리의 언론계는 서울에서 발행되는 몇몇 전국적 일간지가 지배하고 있다. 이들 소수의 대언론들은 의제를 설정하는 힘에 의해서 국가적 의제를 결정하고, 특정한 논조에 의해 정부의 인사나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제공하는 정보와 뉴스를 취사선택하고 해석하는 상징조작의 힘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나 생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그런데 이들 언론들이 거의 한결같이 정치권력에 예속적이고, 기득권세력에 속하는 보수적 언론들이기 때문에 집권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지키는 구실을 한다.


이들 보수 언론에게는 다수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정의감이 그리고 불편부당하게 진실을 밝히겠다는 언론의 사명감이 강하지가 못하다. 진실, 정의, 공정성, 품위 등 언론의 사회적 책임은 집권세력이나 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 앞에서 손쉽게 내팽개쳐지고 만다. 우리의 대언론들에게는 자신들의 커다란 영향력에 걸맞는 언론으로서의 책임의식이나 윤리가 부족하다. 언론단체들이 1996년 신문의 날에 새로운 언론윤리강령을 채택했지만 그것이 우리 언론과 언론인의 참된 취재 및 보도의 지침이 되고 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우리 언론은 여전히 함부로 약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등 인권을 짓밟고, 멋대로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하고, 진실을 조작하거나 왜곡하고, 특정세력에게 편파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래서 우리 언론이 이런 미성숙한 모습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진실하고 공정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고 높은 윤리의식을 지닌 성숙한 언론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가고 있다.


우리 언론의 질적, 윤리적 측면에서의 미성숙에도 불구하고 기업적 측면 또는 양적 측면에서는 과도한 성장을 구가하였다. 그러한 양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 신문들은 치열한 증면 및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쟁은 구독강요, 판촉물 살포, 무가지 남발, 자원낭비, 기사의 질 저하, 기자의 과로 등 심각한 부작용마저 낳고 있다. 우리 언론들은 이런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신문부수공사제도(ABC)의 도입에 저항했고, 저항할 수 없게 되자 제대로 팔리는 한 부를 다섯 부로 치는 등 실사하나마나 한 공사제도로 변질시켜버렸다. 신문의 불공정거래행위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는 신문의 위력에 눌려 제재를 가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힘있는 몇몇 언론은 선거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특히 대통령 후보는 이들 언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한 출마조차 어렵다. 가령,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한 재벌총수는 출마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주요 신문사의 사장을 만나 의사를 타진했었다. 반대로 언론의 호감을 사면 대통령직을 차지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실제로 우리 언론은 김영삼 씨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해진다. 그가 야당지도자로서 오랫동안 관리해 온 언론인들이 그들 언론사의 간부가 되어 그에게 개인적인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이든, 야당의 지도자였으면서도 기득권 세력과 단절이 아니라 그들과 야합하여 기득권을 보호할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든, 또는 이 양자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든, 언론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대통령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이 미리 언론사의 의중을 알아보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거나 언론의 지지를 받으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여러 과정에서 매우 유리해진다는 사실은 언론이 이미 우리 사회에서 거스를 수 없는 권력기구가 되었음을 입증한다. 더구나 몇몇 대언론들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장관의 수명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특히 진보적인 성향의 장관은 언론들의 비판과 비난의 표적이 되어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우리 언론이 정권의 밑에서 정권을 획득하고 유지하는데 보조적인 역할에 했다면, 6월항쟁 이후에는 정권의 위에서 정권을 창출하고 정권의 성향을 좌지우지하였다.


그러나 언론의 이런 과도한 힘은 지난 대선을 고비로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몇몇 언론들이 필사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던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들 언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50년만의 여야간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짐에 따라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던 보수언론의 과도한 힘은 어느 정도 위축되고 있다. 이들 언론은 과거 정권에서와 같이 청와대나 안기부와 긴밀한 정보협조관계도 누릴 수 없게 되었고, 또 김대중 정권의 대북 햇볕정책으로 냉전논리도 별 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고, 무엇보다 이들 언론의 주요 구독자들인 중산층의 급격히 몰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론들이 IMF의 한파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어서 적어도 옛날 같은 기세 등등한 모습은 보이기 어렵게 되었다.


3) 상업화와 내적 통제의 강화의 문제

언론이 상업화하면서 점점 더 저널리즘의 논리보다는 시장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다. 언론의 상업화의 가장 큰 증표는 언론 소유주의 경영장악과 광고주의 영향력의 증대다. 현재 우리 언론은 이 두 측면에서 뚜렷한 부정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 언론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도 달성하지 못한 채 막강해진 소유주와 광고주에게 점점 더 심하게 예속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노골적인 통제가 사라지고 언론시장에서의 경쟁이 격화한 것을 계기로 특히 IMF 체제로 광고수주가 어려워짐으로써 언론 소유주의 힘이 언론에 더욱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일선 기자들은 사주로부터 오는 내부의 간섭이나 통제에 대해서 거의 속수무책인 상태에 있다. 한 때는 언론사 노조를 중심으로 일선 언론인들의 공정보도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런 활동이 거의 사라져버렸고 노조도 겨우 명맥이나 유지하는 상태다. 그래서 언론사 특히 신문사의 편집권이 사주에 의해 심하게 통제되고 있다. 사주의 인사권과 자사이기주의적 생존논리에 의해 일선 언론인들이나 노조의 공정보도 노력은 좌절되고 있다. 


게다가 언론에서 공익의 논리 또는 공공성보다는 시장의 논리 또는 상업성이 두드러지면서 대기업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언론은 대기업의 광고와 협찬에 의존하는 비율이 증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의 증면경쟁은 독자에 대한 정보 서비스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전체 지면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증면 이후에 더 커진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실은 광고수입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신문사들은 문화사업을 구실로 빈번한 수익사업을 하고 그 사업의 선전을 위해 거의 매일 귀중한 1면의 상당량을 안내 기사로 메꾼다. 이와 함께 자신의 문화 및 스포츠 행사에 대기업을 협찬사로 끌어들이는 경쟁도 벌이고 있다. 한 신문사에서 일년에 많게는 20여건에서 적게는 5건 안팎의 협찬행사를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미디어오늘>, 1996. 9. 11., p. 8). 상당한 액수의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 협찬사가 무엇을 바랄 것인지는 불문가지다. 방송의 경우는 프로그램의 제작에 대기업의 협찬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에서는 협찬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등으로 간접 선전을 해준다. 이렇게 언론사들이 자사의 행사나 프로그램 제작에 대기업의 협찬을 받으면서 그 대기업에 독립적인 자세를 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언론에 대기업의 광고나 협찬이 늘어나면 늘어나는 만큼 언론에 대한 대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점은 기사인지 광고인지가 모호한 광고성 알림 기사가 늘어나는 것으로, 그리고 대광고주인 재벌기업이나 기업총수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는 일이 늘어나는 것으로 증명된다. 또 어쩌다 재벌이나 그 총수에 불리한 기사가 초판에 나가면 해당 재벌의 로비에 의해 그 다음 판부터는 삭제되거나 축소되기 일쑤다. 결국 우리 언론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외적 자유의 달성 외에도 사주나 광고주로부터 편집권의 독립 즉 언론의 내적 자유의 달성이라는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짊어지게 된 것이다.


4) 양적 과당경쟁의 문제 

우리 신문들은 세계적인 신문용지대 인상의 여파로 신문용지대가 상당히 인상되었고 1994년 말부터 용지난을 겪고 있음에도 IMF 한파로 광고수주가 급격히 줄어 어쩔 수 없이 지면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기까지 증면경쟁이나 판매경쟁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우리 신문들 특히 서울에서 발행되는 거대 중앙지들은 최근 몇년 동안 계속해 온 증면경쟁과 판매경쟁을 한층 더 격화시켜 왔다. 그 증면경쟁은 매일 40면 내지 48면을 발행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신문들이 신년특집호로 수십 페이지를 추가로 발행하기도 한다. 일례로, <한국일보>의 1995년 신년호는 무려 96면에 그리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신년호는 80면에 달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신문들은 주말 특판을 앞다퉈 발행하였다.

우리 신문들의 지난 수년간의 이러한 증면경쟁을 해온 나머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적정한 기자의 충원없이 급격히 이루어진 증면에 따라 기자들이 써내야 할 기사량이 대폭 증가하였다. 이 때문에 기사의 질이 떨어지고 외국 신문이나 잡지 심지어는 국내의 다른 신문의 기사를 마구 베끼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정부나 기업체 또는 이익단체 등에서 제공하는 홍보성 자료를 거의 여과없이 마구 기사화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게다가 상업성과 어울려 연예, 오락 기사가 홍수를 이루게 되었다. 말하자면 늘어난 지면에 가치있는 기사를 싣기보다는 홍보성 기사나 진부한 흥미거리로 지면을 메우기에 급급하였다. 이런 식의 증면이라면 신문지와 독자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신문들은 증면경쟁에 국한하지 않고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신문시장을 뺏기 위해 무리한 판매경쟁을 벌여 왔다. 판매국의 수를 늘리고, 고가의 경품을 제공하고, 판촉활동비를 지급하는 등 판매경쟁을 위해 무리한 지출을 해왔다. 그 지출의 규모가 엄청나서 재벌을 모기업으로 두지 않은 신문사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다고 한다. 판매경쟁이 가열되어 결국 한 신문사 판매원이 다른 경쟁사 판매원을 살인하는 일까지 벌어져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과열된 판촉활동은 경영에도 압박을 가하였다. 특히 경기침체로 광고시장이 불황에 빠진 상태에서 신문사의 판촉을 위한 무리한 지출은 경영을 압박하는 커다란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증면경쟁과 판매경쟁이 계속되면 결국 대부분의 신문은 공멸하고 극소수의 대신문만이 살아남게 되어 신문시장의 독과점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독과점은 일반 상품시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신문시장에서는 특히 더 바람직하지 않다. 신문은 의견과 사상을 매개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신문이 독과점화하면 그만큼 의견의 다양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그 사회는 한 의견 또는 소수 의견이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사회가 되기 쉽다. 민주주의는 다원주의적 사회이기 때문에 한 의견의 지배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의 교환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신문들은 공존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증면이나 판매에서의 출혈적인 과당경쟁을 하루빨리 자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신 더 좋은 기사를 생산하여 고품질의 언론상품을 제공하려는 선의의 저널리즘적 경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신문들은 자신만의 특성을 살리고, 보다 더 정확하고 깊이있는 기사를 제공하려는 일에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나치게 많은 신문의 지면을 줄이고, 거의 연중 무휴의 발행 대신 정기적인 휴간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모든 독자가 아닌 특정한 독자층을 겨냥하여 그들의 취향과 성향에 부합하는 논조를 개발하고, 신문부수 공사제도를 시급히 정착시키고, 신문의 공동판매제도를 실행해야 한다. 말하자면, 이제 우리 신문들은 한정된 시장을 대상으로 너죽고 나살기 식의 과열된 양적 결쟁을 지양하고, 공존하기 위해 한 편으로는 협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문의 본령인 저널리즘의 향상을 위한 질적 경쟁을 지향해야 한다.


5) 반개혁적 성향의 문제

우리 언론들이 나름대로 새로운 언론환경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변화노력의 하나로 어떤 신문은 가로쓰기를 도입하였고, 어떤 신문은 한 때 일면에서의 광고를 없애기도 했다. 또 몇몇 언론사들이 부처별 취재제도를 전문영역별 취재제도로 전환하고 있거나 하려고 준비중이다. 또 어떤 신문은 고급지를 지향하는 등 차별화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치열해지는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다. 이런 시도들이 정착되면 우리 언론들이 나름대로 특색있는 신문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런 조직 개편이나 차별화 전략에서조차도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에 앞서야 할 언론의 개혁은 어느 언론사에서도 시도되지 않았다. 과거 권력과 유착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진심으로 참회하고,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사이비 언론인들을 청산하고,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언론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먼저 보였어야 한다. 다른 사회부문들에서는 이런 일들이 어느 정도 일어났지만 유독 언론계에서만 이런 일이 없었다. 검찰은 전두환 씨가 백담사로 가면서 정계와 언론계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뿌린 사실은 발설했다고 발표했지만 그에 대해 진정으로 참회한 언론이나 언론인은 없었다.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근엄한 나무람만 높았다. 15대 대선에서 몇몇 신문은 노골적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가 격렬한 항의와 비판을 받았지만 자신들이 지지했던 후보가 낙선한 후에조차도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데 대하여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었다. 


우리 언론들은 다른 기업에게만 윤리와 국제경쟁력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윤리와 국제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력, 소유주, 광고주로부터 독립하여 정확하고, 공정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언론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진실과 정의의 언론이 되어야 한다. 그런 언론만이 국제화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도덕적이고 경쟁력있는 수준높은 언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수준높은 언론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론사 특히 그 사주와 간부들이 언론의 공공철학을 확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언론은 이윤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진실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돌보아야 할 책무를 지닌 공적 제도인 것이다. 언론이 그런 공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게 하려면 그 종사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런 언론이 좋은 언론으로 평가받게 되고 따라서 수익적인 면에서도 유리하다. 언론을 지나치게 사적 이익의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언론의 공공성 따라서 언론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언론사가 언론의 공공철학을 제대로 확립하고 실천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가까운 장래에는 그럴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어렵다. 지금까지 언론사의 사주와 경영진 그리고 심지어 대개는 고위 간부까지도 정치권력을 비롯한 외부의 간섭이나 통제에 쉽게 순응하고 언론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에 신문발행인들의 단체인 신문협회나 편집책임자들의 단체인 신문편집인협회 등이 언론자유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 번도 나서본 일이 없다는 점도 이를 증거한다. 언론사주나 경영진이나 고위 간부들은 외부 특히 정치권력의 간섭이나 통제에 저항하는 일선 언론인들을 해직시킴으로써 정치권력과 한 통속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시행되고 있는, 일선 언론인들의 내적 자유를 보장하는 편집규약제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런 제도가 그냥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제도는 집권세력과 언론사의 커다란 반발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쟁취되어야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선 언론인들의 집단적 실천이 요구된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재 우리 일선 언론인들의 집단적 실천력이 약화될대로 약화된 상태다. 특히 신문사 노조는 격화되는 신문시장의 경쟁 속에서 자사 이기주의의 논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 노조만이 그런데로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언론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일선 언론인들의 단체들과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언론개혁시민연대를 창설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앞으로 이 단체의 언론개혁활동에 많은 시민들의 동참이 요구된다.


6) 맺는 말 

한국과 같은 언론풍토 속에서 언론의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책임은 일차적으로는 언론인들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 이를 위해 언론인들은 개별적으로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려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에 투철해야 하고 그 실천에 철저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개별적 의식과 실천만으로는 언론의 공공성을 제대로 담보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언론의 내적 자유 즉 편집에 대한 언론사 사주의 부당한 개입이나 압력으로부터의 자유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외부의 부당한 개입이나 압력도 흔히 사주나 경영진을 통해 행사된다. 따라서 언론의 내적 자유의 확보가 언론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관건이 된다. 이런 내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언론인들은 집단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언론은 정치권력도 두려워하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특히 우리 언론은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언론의 권력은 선출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용될 때 제재를 가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공적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국가는 필요한 법의 제정이나 개정을 통해서 언론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바람직하게는 언론 스스로가 그 권력행사에서 큰 분별력과 높은 도덕성을 발휘하여 그 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언론은 정부와 대기업과 같은 사회세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면서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는 공적 임무에 투철해야 한다. 공적으로 운영되는 방송이나 신문의 경우는 물론이려니와 사기업으로 운영되는 방송이나 신문의 경우도 언론의 공적 임무를 그 생명으로 해야 하며 따라서 언론과 언론인에게는 높은 윤리와 전문성 그리고 사회적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개혁이 시대정신이 되어 있는 때에 그리고 머지 않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우리 언론이 이런 덕목을 갖춘 좋은 언론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우리 언론이 자신의 힘을 자제하고 분별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론의 비대한 힘이 그렇게 오래 지속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언론민주화운동 세력의 성장이다. 언론사 안의 언론민주화운동과는 달리 언론사 밖의 언론민주화운동은 점점 더 힘을 키워가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세력은 일찍부터 독재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존재로서 언론의 문제를 중요시해왔고 따라서 언론을 계속 비판해왔다. 그러한 운동세력은 정권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여전히 민주화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득권에 연연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언론이야말로 민주화에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민주화운동세력은 한편으로는 <한겨레신문>과 같은 대안적인 신문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큰 기여를 하였고 앞으로는 최근에 발족한 <언론개혁시민연대>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운동세력에 의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아직은 언론의 과도한 힘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머지 않아 상당한 견제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수 언론의 비대한 힘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매체환경의 변화다. 오늘날 언론의 자율화는 새로운 언론의 탄생과 언론간의 경쟁의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쟁적 상황이 한편에서는 부수나 시청률과 같은 부작용이 많은 시장에서의 과열경쟁을 촉발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개별 언론의 힘을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더욱더 언론의 힘을 약화시키고 겸손하게 만들 수 있는 매체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것은 전문 뉴스 채널이 있는 유선 텔레비전과 위성방송의 도입, 그리고 컴퓨터 통신망의 급속한 보급과 같은 다매체 다체널의 상황이다. 특히 급속도로 발전되고 보급되고 있는 개인 컴퓨터의 통신망은 대안적 정보매체로서 그리고 뉴스-온-디맨드라는 주문형 뉴스의 매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는 소수의 언론 특히 힘있는 소수의 신문과 방송이 국가적 의제를 결정하고 국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를 좌지우지하는 일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언론이 완전히 쇠퇴하지는 않겠지만 과거와 같이 절대적인 힘으로는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다매체 다채널과 그리고 컴퓨터 통신망은 대안적인 정보와 견해의 제공에 의해 소수 대언론에 의한 정보와 견해의 독점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언론의 힘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의 전개는 언론의 민주화 나아가서는 한국사회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환영해야 할 바람직한 추이라 할 수 있다. 견제세력도 없고 스스로의 자제력도 부족한 채로 비대하기만 한 힘 더구나 다른 큰 힘과 결합하여 거스를 수 없는 막강한 힘은 어떤 것이든지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과도하고 집중된 권력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이다. 그러한 힘은 우선 견제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분산되어야 한다. 몇몇 언론의 과도한 힘은 현재로서는 제대로 견제를 받지 않아서 문제이지만 그러나 다행히 머지 않은 장래에 분산되어 약화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힘이 과도하게 위축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언론은 정치권력과 대기업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또는 적어도 그래야 한다는 사회적 의무감을 갖고 있는 사회적 제도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힘이 지나치게 위축되면 정치권력이나 대기업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바람직하게는 언론이 정치권력이나 대기업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되 그 힘을 남용하지 않고 분별력있게 사용하는 성숙한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 그 힘을 남용할 때는 견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나 사회 세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언론의 문제 -언론과 정치-"(이효성;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를 듣고 나서...


 87년 6월항쟁이후 우리 사회에 민주화 물결이 다가오면서 많은 부분이 발전되고 자유를 향유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양적인 면에 치우쳤고 질적인 면의 개혁은 아직 더딘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이 사회의 비판기능을 담당하는 언론에 그 책임을 찾을 수 있다. 사회의 비판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언론은 오히려 권력과 자본과의 결탁으로 진정한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힘을 행사하는 권력기구화하면서 상업주의적 성향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강사는 이런 우리 언론의 문제를 다섯가지로 정리한다.


 1)수호견 역할의 문제. 우리 언론은 정치권력을 비판의 성역으로 두고, 정치권력의 의제설정을 따르고, 정치권력의 주의주장을 대변하고, 정치권력의 언행을 미화했다. 이는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정치권력을 위해 국민을 오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비판이다. 2)권력기구화의 문제. 우리의 언론계를 이끌어가는 몇몇 중앙일간지는 그들의 의제를 설정하는 힘에 의해서 국가적 의제를 결정하고, 특정한 논조에 의해 정부의 인사나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면서 제공하는 정보와 뉴스를 취사선택하고 해석하는 상징조작의 힘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식이나 생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이들 언론은 한결같이 정치권력에 예속적이고, 기득권세력에 속하는 보수적 언론들이기 때문에 집권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지키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3)상업화와 내적 통제의 강화 문제. 언론 소유주의 경영장악과 광고주의 영향력 확대의 모습은 언론이 상업화하면서 점점 더 저널리즘의 논리보다는 시장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도 달성하지 못한 채 막강해진 소유주와 광고주에게 점점 더 심하게 예속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4)양적 과당경쟁의 문제. 언론자유화 이후 몇 년 동안 계속해온 양적인 증면경쟁과 판매경쟁은 기사의 질을 떨어뜨리고 심지어 기사를 베끼는 일도 생기게 만들었다.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증면·판매경쟁은 결국 대부분의 신문의 공멸을 가져오고 극소수의 대신문만이 지배하는 신문시장의 독과점화 초래를 걱정한다. 5)반개혁적 성향의 문제.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나름대로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우리 언론은 스스로도 윤리와 국제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권력, 소유주, 광고주로부터 독립하여 정확하고, 공정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언론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진실과 정의의 언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공공성을 담보해내기 위해서 언론인들 개별적으로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려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에 투철해야 하고 그를 실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의 전제되는 조건으로 언론의 내적 자유 즉 편집에 대한 언론사 사주의 부당한 개입이나 압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 


 우리 언론의 현실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 대안과 희망의 모습도 제시한다. 언론민주화 운동 세력의 성장과 소수 언론의 비대한 힘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매체환경의 변화가 그것이다. 견제와 자제력 부족의 언론은 그 과도한 힘의 약화를 통해 사회의 다양화와 민주화를 바라볼 수 있고, 지나친 약화를 막고 일정의 견제와 비판, 감시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한다.


 우리 언론의 문제점이 권력과 자본의 문제에 귀착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공공의 언론이 아니라 언론사의 언론, 언론을 이용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들의 언론이라는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언론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적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의 비판기능을 담당하는 언론 자신이 그들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또한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된 모습은 우리 사회의 힘의 구조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Posted by 강정훈닷컴 정훈온달